삼성화재 재직자 조건도 ‘무효’...노조, 통상임금 소송 일부승소
(월간노동법률 2023.11.22. 2023년 12월호 vol.391)
법원이 삼성화재의 식대보조비, 개인연금 회사지원금, 손해사정사 실무수당 등도 통상임금이라고 판단했다. 모두 재직자에게만 지급한다는 일명 '재직자 조건'이 붙은 수당이다. 법원은 더 나아가 재직자 조건이 무효라고 판시했다. 재직을 조건으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무효라는 취지다. 재직자 조건이 무효인지는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과 상충되는 쟁점인 동시에 현재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판단 중인 쟁점이기도 하다.
다만 근로자들이 청구한 금액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고정시간외수당은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판단이 나오면서 회사가 근로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금액은 줄어들게 됐다.
22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48민사부(재판장 김도균)는 삼성화재 근로자 179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지난 9일 "그날그날 근로제공으로 인해 그 몫의 임금이 이미 발생했음에도 지급에 관한 조건을 부가해 지급하지 않는 것은 근로제공의 대가로 당연히 지급받아야 할 임금을 사전에 포기하게 하는 것으로서 근로기준법에 반해 무효"라고 판결했다.
"재직자 조건 붙은 수당도 통상임금"...또 뒤집힌 2013년 전합
삼성화재 근로자들은 2020년 고정시간외수당, 식대보조비, 교통비 등 각종 수당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야 한다면서 소송을 냈다.
근로계약서에 따르면 삼성화재 근로자들의 연봉은 기본급, 고정시간외수당, 전환급, 식대보조비, 자격수당, 설ㆍ추석 귀성여비로 구성된다. 고정시간외수당은 매월 20시간분 연장ㆍ야간근근로에 대한 수당이다. 고정시간외수당과 전환급, 자격수당은 매월 지급됐다.
2019년 7월까지는 교통보조비도 지급됐다. 평일에 연장근로한 근로자가 신청한 경우 회사가 지급하던 수당이다. 하루에 2시간 이상 연장근로하면 1만8000원, 4시간 이상은 3만 원, 6시간 이상은 4만5000원으로 산정됐다.
손해사정사 실무수당과 개인연금 회사지원금은 취업규칙에 따라 지급됐다. 손해사정사 실무수당은 손해사정사 자격증을 가진 직원 중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에게 매월 5만 원씩 지급하던 수당이다.
재직자에게만 지급하는 일명 '재직자 조건'이 붙은 수당도 있었다. 식대보조비, 손해사정사 실무수당, 개인연금 회사지원금은 매월 15일 재직자에게만 지급됐고 설ㆍ추석 귀성여비는 지급일에 근무할 경우에만 지급됐다.
통상임금은 근로의 대가로 정기적ㆍ일률적ㆍ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을 의미한다. 재직자에게만 수당을 지급하는 경우 고정성이 부정된다는 것이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다. 근로의 대가인 임금이라면 재직 여부와 상관없이 지급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임금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그러나 하급심에서는 재직자 조건이 있는 경우에도 임금으로 인정하는 판단이 이어지고 있다. 재직자 조건 자체를 무효라고 본 세아베스틸 통상임금 사건도 현재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계류돼 있다.
회사는 재직자 조건이 붙은 수당은 2013년 대법원 판결에 따라 임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고정시간외수당, 교통비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봤지만 재직자 조건이 붙은 식대보조비, 회사지원금, 손해사정사 실무수당, 설ㆍ추석 귀성여비는 통상임금이라고 판단했다. 재직자 조건도 무효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식대보조비, 회사지원금, 손해사정사 실무수당은 단순히 복리후생적ㆍ은혜적 또는 사기진작을 위한 금원이라거나 특정 시점의 재직에 대한 대가로 지급되는 금원으로 볼 수 없다"며 "오히려 근로자 입장에서는 기본급과 마찬가지로 소정근로를 제공하기만 하면 그에 대한 기본적이고 확정적인 대가로서 당연히 수령을 기대하는 임금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날그날 근로제공으로 인해 그 몫의 임금이 이미 발생했음에도 지급에 관한 조건을 부가해 지급하지 않는 것은 근로제공의 대가로 당연히 지급받아야 할 임금을 사전에 포기하게 하는 것으로서 근로기준법에 반해 무효"라고 지적했다.
특히 재판부는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오기 전에는 재직자 조건이 없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식대보조비, 회사지원금, 손해사정사 실무수당의 경우 재직자 조건이 부가된 수당의 통상임금성을 부인하는 취지의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되기 전에는 재직자 조건이 부가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이 수당의 본래적 성격이 통상임금임을 더 잘 알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는 전원합의체에 올라가 있는 세아베스틸 사건과 같은 취지다. 지난해 11월 대법원은 전원합의체가 세아베스틸 사건 결론을 내리기도 전에 11월 재직자 조건이 무효라는 고등법원 판결을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하기도 했다.
설ㆍ추석 귀성여비 통상임금 첫 인정..."재직자만 줘도 고정성 부정 못 해"
설ㆍ추석 귀성여비가 통상임금으로 인정된 것은 첫 사례다. 다른 삼성 그룹사 통상임금 소송에서는 전부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판단이 있었다. 이번 사건에서 재판부는 임금 판단 요소 중 하나인 고정성을 넓게 인정했다. 재직자에게만 지급되더라고 고정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설ㆍ추석 귀성여비의 경우 지급 시기와 지급 비율이 사전에 정해져 있었다. 재판부는 "사전에 지급될 것이 확정돼 있는 임금은 고정적인 임금에 해당한더고 봐야 한다"며 "귀성여비는 미리 정해 놓은 지급 시기와 지급 비율을 적용해 정기적ㆍ일률적으로 일정액이 지급돼 왔으며 임의의 근로 제공일에 지급 여부가 이미 확정돼 있어 고정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이어 "설ㆍ추석 귀성여비의 지급 근거와 금액, 지급 방법, 전체 임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그 명칭이나 지급일이 명절이라고 하더라도 특정 시점에 발생하는 생활 수요 충족 용도를 위해 지급되는 것이거나 근로제공과는 무관한 은혜적 수당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재직자 조건에 따라 퇴직자에게는 설ㆍ추석 귀성여비가 지급되지 않았더라도 고정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설령 재직자 조건에 따라 퇴직자에게 지급되지 않았더라도 미리 확정된 통상임금의 범위를 소급적으로 부정하는 사유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며 "근로자의 퇴직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불과해 정상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경우에 지급이 확정됐다면 고정성이 인정된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고정시간외수당은 통상임금 부정했지만...교통보조비 연장근로 인정
그러나 고정시간외수당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성을 부정했다. 통상임금이 아닌 평일 연장ㆍ야간근로에 대한 대가로 본 것이다. 회사는 근로자가 정직으로 일을 하지 못한 경우 고정시간외수당을 지급하지 않기도 했다.
교통비에 대해서 재판부는 일률적으로 지급된 것이 아니라 근로자들의 실제 업무 내용을 고려해 다르게 산정돼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봤다. 근로자별로 추가로 소요되는 비용을 변상하기 위해 지급하는 실비변상이라는 판단이다.
근로자들은 연장근로수당을 다시 산정할 때 교통보조비 신청분도 연장근로시간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사는 2019년 7월까지 연장근로를 한 근로자가 신청하는 경우 교통보조비를 지급해 왔다. 이 교통보조비 신청 시간을 연장근로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회사는 교통보조비를 신청한 시간을 실제 연장근로로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교통보조비는 근로자들이 신청하는 경우 지급한 것이지 회사가 실제 연장근로가 이루어졌는지 까지는 확인하고 관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근로자 측 손을 들었다. 재판부는 "회사가 별도로 근로자들이 신청한 시간이 실제 연장근로시간인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신청 시간을 기준으로 연장근로수당 성격을 가진 교통보조비를 지급했다"며 "고정시간외수당을 보장하면서 평일 연장근로시간을 별도로 산정한 내역이 없는 점을 고려하면 교통보조비 신청 시간을 연장근로시간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삼성화재노동조합은 "이번 판결에서 재직자 조건이 있는 각 수당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한 것은 의미가 크고 개인연금 회사지원금과 손해사정사 실무수당 및 귀성여비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한 것은 처음"이라며 "특히 교통보조비 신청 시간을 연장근로시간으로 봐야 한다고 판결한 부분도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